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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남철시인의 \'첫사랑\'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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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012-12-13 04:17:51 조회수 423

첫사랑 / 박남철


 








 고등학교 다닐 때


 버스 안에서 늘 새침하던


 어떻게든 사귀고 싶었던


 포항여고 그 계집애


 어느 날 누이동생이


 그저 철없는 표정으로


 내 일기장 속에서도 늘 새침하던


 계집애의 심각한 편지를


 가져 왔다





 


 그날 밤 달은 뜨고


 그 탱자나무 울타리 옆 빈터


 그 빈터엔 정말 계집애가


 교복 차림으로 검은 운동화로


 작은 그림자를 밟고 여우처럼


 꿈처럼 서 있었다 나를


 허연 달빛 아래서


 기다리고 있었다





 


 그날 밤 얻어맞았다


 그 탱자나무 울타리 옆 빈터


 그 빈터에서 정말 계집애는


 죽도록 얻어맞았다 처음엔


 눈만 동그랗게 뜨면서 나중엔


 눈물도 안 흘리고 왜


 때리느냐고 묻지도 않고


 그냥 달빛 아래서 죽도록


 얻어맞았다





 


 그날 밤 달은 지고


 그 또 다른 허연 분노가


 면도칼로 책상 모서리를


 나를 함부로 깎으면서


 나는 왜 나인가


 나는 왜 나인가


 나는 자꾸 책상 모서리를


 눈물을 흘리며 책상 모서리를


 깎아댔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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